- 팬덤이 만들어낸 슈퍼 IP, 웹소설
지하철 전광판에 생일 축하 광고가 걸리고, 팝업스토어에 사람들이 오픈런을 하며,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져 흥행했다는 소식이 연일 들린다. 아이돌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오산, 지금 이러한 현상의 주인공은 바로 웹소설이다.
웹소설이란 네이버 시리즈, 카카오페이지와 같은 플랫폼에서 즐길 수 있는 장르 소설로 현재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온라인 콘텐츠이다. 2020년만 해도 전체 시장 규모가 6,400억 원이었던 웹소설은 지난해 1조 390억 원으로 2년 만에 62%나 성장하는 시장이 되었다. 웹툰을 넘어 새로운 콘텐츠 보고로 떠오른 웹소설, 지금 웹소설은 가장 주목받는 K-컬쳐이다.
웹소설 인기 온 더 넥스트 레벨
웹소설의 시조새인 귀여니의 ‘늑대의 유혹’이나 이영도 작가의 ‘드래곤 라자’를 경험한 세대라면, 지금 웹소설의 인기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이 작품들도 당시 영화화되고 단행본으로 출간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최근 웹소설이 받는 대우에 비하면 그 시장의 규모는 게임이 되지 않을 정도다. 과거에 비하면 최근 웹소설들의 인기는 가히 넥스트 레벨이라고 할 수 있다.
1.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 (데못죽)
카카오페이지의 현대 판타지 웹소설 ‘데못죽’은 주인공이 ‘박문대’에게 회귀/빙의한 뒤 1년 안에 데뷔를 못하면 죽는다는 상태창으로 인해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참가하며 전개되는 스토리이다. 일명 ‘활자돌’이라는 타이틀이 생길 만큼 실제 아이돌을 능가하는 팬덤을 만들어 냈다. 유명 브랜드들의 팝업이 연일 열리는 더현대의 팝업 매출 1위를 달성할 정도로, 이주 남짓 열린 팝업에는 1만 5,000여 명이 방문하며 1인당 평균 금액 50만 원이라는 놀라운 인기를 보여줬다.
2.화산귀환
'화산귀환'은 네이버 시리즈에서 연재 중인 무협 장르 소설로 누적 매출액 400억이라는 기록을 만들어낸 히트작이다. 화산파 소속의 천하제일의 검객이었던 주인공 천명이 100년 후로 환생/빙의해 망해가는 화산파를 다시 부흥시키는 이야기이다. 진입장벽이 높은 무협 장르임에도 성별을 가르지 않는 인기를 얻고 있다. 굿즈 출시 3일 만에 3억 매출을 달성하였고 오디오 드라마 제작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은 목표 금액의 9배가 넘는 7억 원이 모였다.
3.시맨틱 에러
리디에서 연재되었던 '시맨틱 에러'는 캠퍼스물과 BL 장르가 섞은 웹소설로 일상적인 개그 요소와 로맨스 요소의 적절한 조화로 많은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BL*이라는 장르임에도 온/오프라인 단행본부터 웹툰, 애니메이션, 드라마, 영화까지 수많은 미디어 믹스로 재탄생되며 원작의 인기를 이어나갔다. 특히나 왓챠에서 종영 후에도 7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화제를 모았다.
*BL: Boys Love의 약자로 남자 사이의 로맨스를 다루는 장르
스낵 콘텐츠를 넘어 방대한 세계관으로 하나의 장르가 되다
웹소설은 이제 읽고 끝나는 B급 콘텐츠를 벗어났다. 매력적인 캐릭터, 밀도 있는 서사와 쉽고 직관적인 문법 등 읽는 순간 마지막 회까지 결제를 할 수밖에 없다. 킬링 타임용 스낵 콘텐츠를 벗어나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 자체가 웹소설의 장르가 된 것이다. 각 웹소설 작품은 그들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고 독자가 그 세계관에 동의하고 공감하는 순간, ’팬’이라는 이름의 ‘과몰입러’들이 탄생한다.
대표적으로 ‘데못죽'의 경우 캐릭터별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작품 속 캐릭터의 목소리를 가상 캐스팅하는 보이스 캐스팅 콘텐츠, 심지어는 직접 작품 속 등장한 곡들을 직접 창작하여 유튜브나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리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현실의 대한민국이 아닌 ‘데못죽' 속 ‘데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공식 굿즈가 생기고 팝업스토어가 열리면 이들의 지갑이 열리고 발걸음이 향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지금 내가 빠져있는 세상을 더 구체화하고 풍요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데한민국: 데못죽 팬들이 작품 속 한국을 부른 말
과몰입러들, 서브컬처를 1조원 비즈니스로 만들다
브랜드와 콘텐츠를 막론하고 세계관이 중요해진 요즘, 웹소설은 어떻게 그들만의 착실한 과몰입러들을 만들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렇게 탄생한 팬들은 어떻게 지금 웹소설을 서브컬처에서 1조 원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만들어 준 것일까?
#.쉬운 접근성
아무리 매력적인 콘텐츠라도 접근하기 어렵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요즘 웹소설은 모바일 최적화를 통해 스마트폰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내가 원할 때 앱에 접속해 즐길 수 있다. 또한, 한 편당 5,000자 미만의 3~5분 분량으로 매일매일 업데이트되기에 출퇴근이나 점심시간 등 짧은 시간에도 짬짬이 즐길 수 있는 게 특징이다. 클릭 한 번으로 24시간 세계관 정주행도 가능하다. 여기에 ‘기다리면 무료(기다무)’ 라는 독특한 과금 시스템이 등장하며, 유료 콘텐츠인 웹소설의 진입장벽을 한껏 낮추는 역할을 해주었다. 일부 마니아만 즐길 수 있던 콘텐는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몰입이 디폴트인 장르물
웹소설의 본질이 장르 소설이라는 점도 큰 역할을 한다. 일명 웹소설 기본 공식이라 불리는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 설정과 능력치 만렙의 먼치킨 주인공과 같은 판타지적 요소는, 팍팍한 현실과 다른 사이다 전개를 가능하게 해 이야기에 더 몰입하게 만드는 중요한 부분이다. 여기에 장황한 묘사 글 대신 요즘 세대가 익숙한 짧은 문장과 카톡스러운 대화문으로 스토리가 진행될 수 있는 것도 장르 소설이 특정한 포맷이나 스타일이 없기에 가능한 부분이다. 그리고 이는 요즘 MZ 독자들의 취향을 저격하며, 이들의 상상력과 몰입력을 높여주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작가 전성시대, 쏟아지는 콘텐츠
웹소설의 인기가 나날이 올라가고 돈이 된다는 소식에 웹소설 작가의 전성시대가 시작되었다. 작품을 연재하기 위해 특별한 조건이 필요가 없고, 투자 비용 또한 높지 않다 보니 초등학생부터 시니어까지 누구나 도전하는 분야가 된 것이다. 지난해 네이버가 10억 원의 상금을 걸고 개최한 웹소설 공모전에 9,000편이 넘는 작품이 출품됐다고 하니, 이건 흡사 코인 열풍에 버금간다. 작가 매니지먼트 회사도 증가해서 연예인처럼 관리도 받는다. 그리고 이렇게 생산자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경쟁이 심화되고 이는 곧 작품의 퀄리티가 상승과 방대한 양의 콘텐츠 수로 이어졌다. 즉, 웹소설 르네상스 시대가 열린 것이다.
#.IP 밸류체인으로 완성되는 세계관
기존의 IP 사업이 웹툰에서 시작해 영화, 드라마 등으로 확장하는 것에 그쳤다면, 지금 IP 공식은 웹소설에서 웹툰화 된 다음 영화나 드라마, 게임으로 완성되고 더 나아가 2차 창작물인 굿즈와 팝업스토어로 다양한 미디어 믹스를 자랑한다. 이른바 원소스 멀티유스, 밸류체인 공식이 완성된 것이다. 보는 소설에 가까운 웹소설은 웹툰보다 원초적인 스토리 콘텐츠로, 이미 눈으로 그려진 웹툰이 웹소설화 되는 것보다 아직 그려지지 않은 웹소설이 웹툰화 되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영향력이 크다. 이러한 밸류체인 형성은 이미 웹소설의 세계관에 빠진 과몰입러들의 도파민을 자극하고, 본인의 상상력이 전부였던 텍스트를 벗어나 드라마, 애니메이션, 오디오 드라마, 굿즈 등 가지고 놀 거리가 많아지면서 방대한 세계관을 완성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이렇게 다양한 IP 사업을 통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 점차 견고해지면서, 신규 팬들을 끌어들이며 원작의 수명 또한 연장되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실제로 ‘재벌집 막내아들’의 경우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2018년도 완결된 웹소설도 함께 역주행했다. 영화 하나를 보면 떡밥이나 배경 이해를 위해 디즈니 플러스에 가입하게 만드는 마블급의 세계관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웹소설의 팬 비즈니스화
이처럼 웹소설 시장이 1조 원의 비즈니스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꼽히는 건 바로 대형 플랫폼들의 등장이다. 웹소설의 강력한 파워를 일찌감치 간파한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대형 플랫폼들이 잇달아 문피아, 래디쉬 등을 인수하며 새로운 대형 생태계를 만드는 데 일조하였다. 특히 웹소설 시장이 탄탄한 팬덤을 바탕으로 한 비즈니스인 것을 알아챈 대형 플랫폼들이, 그들이 가장 잘 하는 상업적인 툴을 적절하게 활용 및 적용하면서 웹소설은 새로운 “팬 비즈니스” 의 성공적인 결과가 되었다. 이른바 서브컬쳐였던 웹소설 시장이 자본을 만나 대한 콘텐츠 왕국으로 탈바꿈된 것이다.
현재 웹소설을 유통하는 대형 플랫폼들은 팬들의 과몰입을 계속 이어나가게 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최근 들어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웹 콘텐츠인 웹툰과 연계하는 ‘노블코믹스’가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이다. 영상화 보다 제작 비용이나 기간이 짧으며 오히려 텍스트에 더 충실한 이미지화로 원작 팬들의 과몰입력을 또 한 번 상승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세계관 과몰입러들을 위한 인터랙티브 콘텐츠를 제공하는 웹소설 플랫폼도 생겨났다. ‘스플’은 스토리의 전개와 결말을 독자가 선택할 수 있게 한다. 이전에 넷플릭스에서 화제를 모았던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의 웹소설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를 통해 정해진 내용을 보기만 하면 됐던 독자를 소설의 주인공으로 전환시키며 급이 다른 몰입감을 만들어낸다. 최근 20억 규모의 투자를 유치한 ‘플링’의 경우 오디오 콘텐츠와 웹소설을 연결했다. 작품을 정주행 하면 오디오 드라마를 무료로 공개해 이용자가 작품의 세계관을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새로운 몰입 포인트들은 앱 런칭 2년 만에 누적 다운로드 50만 명이라는 기록을 만들었다.
마케팅 방식 또한 팬 중심으로 점점 변화했다. 이전에는 유명 배우들이 작품의 대사를 연기하는 것으로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면 지금은 마치 웹소설 캐릭터들이 현실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으로 팬들의 만족감을 높이는 것에 좀 더 집중하고 있다. 리디의 경우 ‘시맨틱 에러’ 속 캐릭터인 ‘장재영’의 인스타그램의 정보를 토대로 실제 계정을 만들어 작품 내용과 캐릭터 성격을 반영한 일상 사진, 셀카, 코멘트를 업로드해 별다른 광고 없이 일주일 만에 8천 명의 팔로워를 만들어냈다.
작가들 역시 팬 관리가 중요해졌다. 업데이트 후 댓글로 반응을 살피고 실시간 피드백도 잊지 않는다. 아이돌들의 팬 관리 못지않을 만큼 웹소설 작가와 소설도 꾸준한 소통이 생명이다. 선택받기 위해 소설 제목의 키워드가 중요하고 해시태그 설정도 중요한 홍보 요소이다.
즉, 이제 웹소설은 하나의 콘텐츠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 뒤를 받치고 있는 팬덤 그 자체가 되었다. 최근 웹소설이 슈퍼 IP로 각광받으며 영화나 드라마로 계속 제작되는 이유도 원작의 팬덤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매체의 조사에 따르면 웹소설의 2차 창작물을 소비한다는 팬들의 비율은 97%나 될 정도로 높은 로열티를 보여준다.
이처럼 웹소설을 팬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본다면 최근 네이버와 카카오 일본과 북미 등 해외 웹 콘텐츠 기업들을 공격적으로 인수하며 해외 시장으로 세력을 넓히는지도 이해가 된다. 국내에서도 대박을 터트린 ‘나 혼자만 레벨 업’의 경우 미국에 진출한 뒤 애니메이션화를 요구하는 청원에 17만 명이 참여하기도 했다. 즉, 웹소설은 문화와 언어의 장벽을 넘어 국내뿐만이 아닌 해외에서까지 탄탄한 팬덤을 만들어낼 수 있는 막강한 사업 아이템이 된 것이다. 머지않아 글로벌적인 팬덤을 지닌 제2의 BTS는 웹소설계에서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가지 공장 한 줄 평
ㅡ 브랜드 콜라보레이션, 이제는 웹툰보다는 웹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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