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나현

판타지에서 다큐로 장르 변경한 연애 프로그램의 속사정


ㅡ 이제는 사랑도 이별도 하이퍼 리얼리즘


최근 방송가에서 쏟아져 나오는 포맷이 있으니, 바로 연애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이거 “연애” 프로그램 맞아?’ 싶은 정도로 변하고 다양해졌다. 풋풋한 첫 만남을 다루는 게 아니라 사랑의 끝인 이혼까지 다루며 주제의 수위가 달라졌달까. 사랑과 결혼이라는 주제가 방송국의 진부하지만 언제나 먹히는 단골 가십거리인 건 알고 있었는데, 왜 이렇게까지 변하는 걸까?


사랑과 결혼, 어디까지 해봤니?


말쑥한 정장을 입고 쑥스럽게 사랑의 작대기를 던지던 사랑의 스튜디오를 시작으로 짝, 하트 시그널과 같은 수많은 연애 프로그램들이 생겨왔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풋풋하고 설레는 연애의 시작을 보여주며 있는지도 몰랐던 연애 세포를 자극하는 게 목표였다면 지금은 연애와 결혼, 어디까지 가봤니? 를 보여주는 게 목표다. 버젓이 애인을 두고 다른 이성과 데이트하거나 LGBTQ*의 연애를 담거나, 돌싱이나 이혼이 주제로 한다. 특히 이혼 프로그램은 꽤 매콤해서 이게 사랑과 전쟁 같은 픽션인지 찐 현실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LGBTQ: 성 소수자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렌스젠더, 퀴어)



1.매워진 연애

설렘 가득한 연애 초반은 이미 다 겪고 관계에 지쳐 이별을 고민하는 커플을 다루는 연애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환승연애는 전 연인과의 재회 또는 새로운 사람을 선택하는 프로그램이다. 헤어진 연인들이 한집에서 지내며 새로운 인연을 찾는다는 파격적인 내용과 함께 공감 100% 가능한 일반인 출연자들의 연애와 이별 고민으로 시즌 2까지 방영되고 있다. 체인지 데이즈는 환승연애보다 좀 더 맵다. 사귀고는 있지만 이별을 고민하는 커플들이 모여 서로의 짝을 바꿔 데이트한다. 연인 사이 금기시되는 바람을 허용하는 프로그램이라며 말도 많지만 그만큼 연일 화제가 되며 시즌 1의 경우 누적 조회 수 4700만 뷰를 기록하였다.



2.불안한 이혼

연애 프로그램에서 점점 결혼을 다루더니 이제는 이혼이다. 티빙에서 방영 중인 결혼과 이혼 사이는 제목이 곧 내용이다. 결혼과 이혼이라는 두 가지 선택 사이에서 고민하는 있는 일반인 부부들이 출연해 변호사와 상담가들을 만나며 결혼 생활 유지를 결정하게 된다. 갈등 해결 방법, 경제력 차이 등 부부들의 솔직한 고민이 기혼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고 수위 높은 싸움들이 적나라하게 방영되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미 이혼을 겪고 재시작하고픈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돌싱글즈도 있다. 이미 결혼의 쓴맛을 겪은 이들끼리 진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서로 가까워져 간다. 기존 연애 프로그램들과 마찬가지로 커플 매칭 포맷을 가지고 있지만 빠른 매칭 후 동거 기간을 가진다는 점이 차별화 포인트로 벌써 시즌 3이 방영되고 있을 정도로 인기이다.



3.소수였던 사랑

이때까지 연애 프로그램들이 당연하게 남녀의 사랑에 대해 다뤘다면 이제는 그렇지 않다. 최근 성소수자의 연애를 담은 콘텐츠가 런칭되어 사람들의 반응이 뜨겁다. 국내 최초 리얼 커밍아웃 로맨스라고 소개하는 메리퀴어와 남자들의 연애 리얼리티를 담는 남의 연애가 그 주인공이다. 메리퀴어의 경우 성소수자 커플이 일상적이 데이트나 결혼 준비 과정에서 이성 커플들은 전혀 경험하지 못할 허들에 부딪히는 모습을 통해 사회 속 깊게 박혀 있는 차별을 조명한다. 자극적으로 풀 수 있는 주제임에도 이들이 겪는 현실의 벽을 담백하게 보여줘 호평을 얻고 있다.


순둥했던 연애가 독해진 이유


우리도 알다시피 연애가 최근에서야 관심 폭발하는 주제가 된 것은 아니다. 그 먼 옛날 신화부터 궁중 야사, 엄청난 양의 문학, 그리고 네이트판 등을 거쳐오며 지금까지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 연애의 죽지 않는 인기 요인은 바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라는 것이다. 정말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인생에서 한 번쯤 누군가를 좋아한 감정을 느껴봤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설레는 만남부터 수많은 갈등, 그리고 가슴 찢어지는 이별까지 웬만한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한 감정선을 담고 있다. 이렇게 원래도 잘 나가고 있던 연애, 꼭 독해질 필요가 있었을까?


1.OTT 시대, 컨텐츠의 다양화

이제는 달콤하기만 한 이야기로는 승부가 어렵다. 3초 만에 채널을 돌리는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절에 사는 있는 우리들, 좀 더 자극적인 스토리가 아니면 눈길이 가지 않는다. OTT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더 이상 심의도 무의미해지고 사람들은 점점 더 매콤한 콘텐츠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연애 프로그램의 경우도 넷플릭스의 ‘투 핫!’ 같이 매콤한 걸 넘어 마라 맛 수위를 자랑하는 프로그램을 손쉽게 볼 수 있게 되면서 국내 프로그램들은 거의 소꿉장난 수준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진입 허들이 낮은 연애라는 주제에 ‘이게 한국에서 괜찮아?’ 싶은 이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아슬아슬한 포맷을 더해져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다. 앞서 소개한 프로그램 중 돌싱글즈를 제외한 모든 방송은 OTT 서비스에서 자체 제작 및 방영되고 있다.


넷플릭스 '투 핫!'과 같은 프로그램과 경쟁하는 국내 OTT 서비스


2.변화한 가족관과 라이프 스타일

이때까지는 연애가 청춘의 꽃이었다면 이제는 감정과 시간 소비로 여겨지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결혼을 더 이상 의무로 생각하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젠더 감수성, 커리어, 경제력 등 다양한 요인들로 인해 비연애주의까지 선언하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현실 연애에 관심이 없다 해서 ‘연애’를 콘텐츠적으로 소비하지 않겠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하지 않으니 TV로 만족하겠다는 마인드가 커졌다. 즉, 연애의 경험만 대리로 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원하는 대리 연애는 비단 설레는 첫 만남만이 다가 아니다. 설레는 만남으로 끝나는 연애가 어딨다고! 만남 자체에서 오는 다양한 감정과 상황을 폭넓게 경험해 보고 싶어진다.


많은 공감을 얻은 '써클 하우스'의 비연애주의 에피소드

이혼의 경우, 10명 중 6명이 결혼을 하기도 전에 이혼의 가능성을 염두하고 졸혼, 황혼 이혼도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주례의 단골 대사였던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함께 사는 것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알게 된 사실이다. 이제 이혼은 결혼의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이렇다 보니 얼마나 사람들이 예쁘게 만나고 가정을 꾸려가는지보다 남들은 어떻게 이혼하는지, 어떻게 극복하는지가 더 궁금해진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미혼인들에게는 결혼 전에는 알 수 없는 다양한 상황을, 기혼자들에게는 현실적인 ‘만약에...’ 시물레이션을 돌려볼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요즘 조회수 치트키나 다름없는 풍자와 왓챠에서 흥행한 '시맨틱 에러'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소수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 LGBTQ의 연애와 결혼이다. ‘내 주변에는 LGBT가 없는데 소수가 아니라니?’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다면 이들의 숫자가 적어서가 아니라, 내가 그만큼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아니어서 말을 못 들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비약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는 더 이상 하리수와 홍석천처럼 공인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매체에서 LGBTQ를 접할 수 있다. 풍자와 같이 성 정체성을 밝히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인터넷 기반 방송인들도 많이 늘어났고 왓챠가 선보인 드라마 ‘시맨틱 에러’도 대중적이지 않은 BL*장르임에도 인기 차트 상위권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그만큼 이제는 소수의 사랑 이야기도 더 이상 소수가 아니게 된 것이다.

*BL: Boy’s Love의 줄임말로, 남성 간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장르를 뜻하는 말



드라마보다 과몰입하게 만드는 연애 리얼리티


이처럼 요즘 연애 프로그램이 유통 채널 때문이든,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 때문이던, 더 이상 아름답고 설렘으로 가득한 사랑의 판타지를 찾아볼 수 없게 된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보기 불편할 정도로 매워진 요즘 연애와 이혼 관찰 예능의 특징은 이보다 더 현실적일 수 없다. 이른바 2022년 트루먼 쇼 애정 편이 시대의 흐름이 되었다.


ㅡ 과몰입하게 되는 일반인 출연자

강호동의 천생연분이나 우리 결혼했어요 같은 이전의 연애 프로그램들은 비주얼부터 탈 현실급인 연예인들이 나와 연출된 상황을 보여주는 것에 그쳤다. 하지만 짝 이후 하트 시그널의 성공으로 부활한 일반인 연애 프로그램들의 기세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연예인은 아니지만 훈남 훈녀가 나와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은 물론, 영자, 철수와 같은 평범 그 자체의 이름으로 옆집에 사는 내 친구와 똑같은 것 같은 사람이 출연하기도 한다. 하지만 친근하게만 느껴질 수 있는 출연진들 역시 단순히 사랑을 찾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대부분 배우나 인플루언서를 목표하거나 혹은 사업에 본인들이 얻은 인기를 반영한다. 이를 통해 시청자들은 확장판 버전의 새로운 이야기와 비하인드를 다른 채널에서 다시 한번 접할 수 있게 된다. 이는 꼬리에 꼬리를 물어 엄청난 세계관을 가져오고 이는 곧 미친 몰입감으로 사람들을 이끈다.


이제는 익숙한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출연자들의 유튜브 채널 (출처: 오영주, 곰민영 유튜브 채널)

ㅡ 관심과 오지랖 그 사이, 관찰 예능

연애 예능에 사람들을 몰입시키는 또 다른 요소는 관찰 예능 포맷이다. 짜인 각본 없는 관찰 예능의 특성상 드라마처럼 정형화된 클리셰는 찾아볼 수 없다. 물론 큰 틀은 존재하지만 대부분 출연진들의 이야기를 제3의 관찰자 입장에서 따라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기에다가 이제는 연애 프로그램의 고정 포맷이 된 연예인 패널들의 현실적 코멘트도 재미를 더한다. 시청자와 같은 입장에서 상황을 판단하며 색다른 시각 또는 텔레파시라도 통한 듯 같은 멘트를 더할 때면 함께 울고 웃으며 공감대를 증폭시켜준다. 이렇듯 혼자 보고 있어도 수다를 떠는 느낌에다가 드라마보다 더 설레고 더 자극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지는데, 굳이 드라마를 봐야 할 이유가 없다.


연애 프로그램의 고정 포맷이 된 관찰 카메라 + 스튜디어 패널 구성


방송, 하이퍼 리얼리즘에 빠지다


우리의 일상에서 OTT가 극장을, 유튜브가 TV를 대신한다는 것은 더 이상 가설이 아닌 사실이 되었다. 유튜브가 방송보다 더 미디어로서 힘이 강해진 지금, 더 이상 기존 방송들이 만들어오던 사탕발림 사랑 이야기는 감동이 없다. 하지만 방송가가 유튜브 콘텐츠와의 경쟁을 위해 자극적인 소재들을 차용하고 있는 것이라고만 생각하기엔 최근 트렌드가 심상치 않다. 강유미의 좋아서 하는 채널, 너덜트, 숏박스, 이과장 등 현실보다 더한 현실을 보여준다는 하이퍼 리얼리즘 채널들의 콘텐츠가 연일 유튜브 인기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이과장의 좋좋소는 중소기업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고 숏박스는 리얼하고 디테일한 설정과 연기에 댓글에는 감탄이 끊이질 않는다. 특히 숏박스에 출연하고 있는 개그맨 엄지윤의 연기는 ‘엄테일'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하이퍼 리얼리즘의 결정체를 보여준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MZ 세대가 선호하는 드라마들 또한 철저한 고증에 기반한 리얼리티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건 다큐가 아닌가 싶었던 나의 해방일지는 경기도와 서울을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의 현실과 고충을 계란 흰자, 노른자와 같이 찰떡표현으로 숱한 공감을 얻어냈다. 또한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경우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법정 장면들이 해당 업종 종사자들에게 호평을 얻으며 상승하는 인기에 한몫을 보탰다. 이처럼 이제는 실제 현실을 얼마만큼 반영했는지가 콘텐츠 흥행의 성공 포인트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러한 트렌드를 미리 감지한 것인지 사랑과 결혼의 오지랖 끝판왕이 사랑과 전쟁도 ‘NEW 사랑과 전쟁’으로 돌아왔었다. 이전처럼 ‘에이...말도 안 돼’를 연발하게 했던 과장된 이야기가 아닌 딩크 부부들의 현실적인 고민과 같이 새로운 시대에 맞는 고부 갈등, 워킹맘, 독박 육아 등을 녹여내며 MZ 세대의 관심을 끌어냈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통해 재미와 현실성 모두를 가져온 것이다.


또한, 이미 현실이 된 연애 프로그램들에도 더 진한 하이퍼 리얼리즘이 녹아들고 있다. 최근 오은영 박사가 출연하고 있는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이나 변호사와 심리상담가가 패널로 등장하는 고딩엄빠처럼 다양한 연애와 결혼, 그리고 이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현실적인 솔루션을 받는 것이 인기를 얻고 있다. 상황을 지켜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주는 과정에서 더 리얼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짜, 포장된 허세를 누구보다 싫어하는 MZ의 특성상 현실에 기반한 리얼한 스토리는 앞으로도 더 사랑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리얼리즘이라는 말이 가진 어폐가 말해주듯 그만큼 부정적인 모습들도 여과 없이 노출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최근 이혼 프로그램에서 특정 프레임에 씌워진 여성과 남성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부부의 갈등 속에 낀 아이들의 모습까지 노출되는 것들이 대표적이다.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여 편견 없는 차별화된 콘텐츠를 이야기하면서 또 다른 혐오와 편견을 재생산하지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가지 공장 한 줄 평


ㅡ 연애를 뒤이을 하이퍼 리얼리즘의 NEXT가 궁금하다면, 오늘 쉬는 시간 직장 동료 혹은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어떤 오지랖 수다가 이어졌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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