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예리

트로트 신화, 이제 시작이다

길었던 트로트붐,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심상치 않은 트로트 유행의 전조


3월 12일, 케이블 tv 서바이벌 프로그램 역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미스터 트롯’ 최종 우승자 선정을 앞두고 모은 대국민 문자투표 수가 너무 과하게 많이 몰린 탓에, 시간 내 집계를 마치지 못하고 생방송 최초로 우승자 발표의 일주일 연기를 선언한 것이었다. 경험 많은 프로 MC 김성주 조차도 진땀을 흘리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정한 집계를 위해 조금만 기다려 주십사’고 부탁했고, 결국 우승자는 이틀 후에야 빗발치는 시청자들의 궁금증과 함께 긴급 생방송으로 밝혀지게 되었다.


베테랑 MC 김성주도 손에 땀을 쥐게 만든 그 사태 / 쟁쟁한 5인을 제치고 우승자로 우뚝 선 임영웅 참가자


그런데 트로트의 유행은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9년부터 시작된 트로트 유행은 이미 심상치 않았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팬심으로 묶어 진정한 ‘지역 대통합’을 이끌어낸 국가대표 트로트 여제 송가인을 필두로, 젊은 층과 장년층의 세대 대통합을 이루어낸 (알게 모르게 노련미가 넘치는) 뽕포유 출신 유산슬이 떠오른 사례를 기억하는지? 두 번의 대형 흥행을 답습한 방송사들은 너 나할 것 없이 <나는 트로트 가수다>, <트롯 신이 떴다>등의 프로를 앞다투어 편성하기 시작했으며, 현재는 여전히 뜨거운 인기를 입증하듯 2020년엔 세 번째 대형 흥행주자 미스터 트롯까지 나오게 된 상황이다.


여러 차례의 굵직한 ‘대박 히트’는 트로트 콘텐츠가 우연이 겹친 반짝 유행을 넘어서서, 하나의 트렌드 코드로 자리 잡게 될 것을 시사했다. 결코 짧지 않은 유행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구성진 가락 속 흥겨운 과 애환이 듬뿍 나이불문 누구나 춤 출수 있어요, 2020년, 어쩌면 지금 가장 대중적인 곡 장르”


어디서 왔니? ‘세련된’ 뽕짝의 귀환


트로트의 유행, 그 도화선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구글에 ‘트로트’를 검색하면 트로트의 모든 시대별 부흥과 쇠락이 잘 정리된 나무 위키 페이지가 나온다. 하지만 우리가 궁금한 것은 그 기나긴 역사가 아니다. 본 리포트에서는 ‘2020년에 유행한 트로트'의 유행 출발점이 어디였는지부터 탐구해 보고자 한다.



(1) 트로트의 유행, 1대 조짐 - “시작은 유튜브 아이돌 ‘버드리’ ”

필자는 이 유행의 서막을 2018년 축제의 여왕 ‘버드리’로 짚어본다. 그녀는 엄밀히 말하면 트로트 전문 가수라기보단  만능 엔터테이너에 가깝다. ‘품바 공주’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축제/휴게소 거점의 최강 뽕끼 퍼포먼스형 가수로서, 거친 입담과 함께 장구/노래/댄스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 곡 소화력으로 장년층의 무한 애정을 받고 있는 아티스트다. 이 구성진 아티스트를 트로트 유행의 출발점으로 보는 이유, 바로 중장년층의 본격적인 ‘퍼포먼스형’ 유튜브 시청을 이끌어낸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2017-2018년까지만 해도 중장년층의 유튜브 이용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마저도 주로 즐기는 시청 콘텐츠는 뉴스와 메들리 반복 재생 영상에 그치는 형세였을까. 그러나, 버드리 공연 영상을 올리는 ‘금강산 tv’ 채널이 제대로 등판한 후로 상황은 달라졌다. 중장년들이 '오디오 콘텐츠’ 소비에서 버드리 같은 ‘5060들의 아이돌 퍼포먼스’ 콘텐츠를 소비하는 형태로 시청 형태를 바꾼 것이다. 눈이 즐거운 퍼포먼스형 영상이니 모두가 두루 보길 원했고, 카톡과 밴드로 자연스레 공유까지 하게 된 것은 덤. 장년층은 버드리의 연관 재생 목록으로 점점 트로트까지 퍼포먼스 영상까지 시청하게 되고, 이쯤부터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청년층들은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으로 트로트 및 버드리 콘텐츠를 접하게 된다. (당시 20대들의 소소한 이슈, “엄마, 버드리란 사람 알아?”)


다재다능 유튜브 스타로 유명세를 떨치는 '버드리'


(2) 트로트의 유행, 2대 조짐 - “시니어 덕후를 만들어낸 ‘미스 트롯’”

두 번째 사례부터는 모두에게 슬슬 익숙한 사례가 될 것이다. 2020년 ‘송가인’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그러나 모두가 트로트를 유행이라고 여기는 지금보다 조금만 더 과거로 돌아가서, 2019년 미스 트롯이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막 떠올랐던 시기를 떠올려보자. 시청률 5%로 시작했던 미스 트롯은 마지막 회 18%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편 역사의 신화를 썼는데, 이 시청률에 기여한 것은 송가인과 홍자의 불꽃 튀는 라이벌 구도였다. 이 라이벌 구도는 시청률의 상승만 불러온 게 아니다. 장년층에게 핸드폰을 쥐고 자신의 pick에게 투표를 하게끔 유도해, 진정한 문화소비 주체자로 만들었던 것이 진짜 효과다. 중장년판 프로듀스 101이었달까? 유튜브로 혼자 오롯이, 혹은 친구들과 단출하게 퍼포먼스 영상을 공유하던 이들은- 스마트 투표를 행사할 수 있는 슈퍼 파워를 가지게 되면서 놀라울 정도의 참여 화력을 키워갔다. 대중성을 겸비한 트로트 시니어 덕후가 탄생하게 된 기념비적인 순간이었다.



사심 가득, 리서치하며 팬이 된 송가인의 무대..(감동)


(좌) 송가인과 홍자 팬덤의 질서있는 팬 문화 / (우) 실용적인 송가인 굿즈



(3) 트로트의 유행, 3대 조짐 - “트로트의 상대적 문외한 ‘청년층’까지 끌어들인 ‘뽕포유’로 완성”

2019년 중반부터는 버드리, 송가인, 홍자 등 중장년층 사이에서 굵직굵직한 스타가 화제가 되며, 이미 중장년층에서는 ‘트로트의 르네상스’ 축제가 열리고 있었던 시점이었다. 그러나 이 인기의 판을 훨씬 더 대중적으로 키우게 된 것은 뽕포유부터다. 김태호가 키운 ‘뽕의 신’ 유산슬은 예능, 유튜브, 현장 플레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멀티플레이어로, 기존의 5060과 트로트 문외한의 청년층이 문화적으로 섞이게 만들어준 중요한 아이콘이 된다. 장년층 트로트 전문가와 2030의 호기심 포인트가 맞물려 나타난 티핑포인트가 이 시점. 이때를 기점으로 트로트의 유행은 나이의 장벽을 극복했고, 본격적 대중화로서의 흥행 수순을 착착 밟아가게 된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신인답지 않게 노련한 유산슬




트로트 = 장년층의 대중화를 고스란히 말해주는 결과물


#버드리, #미스 트롯, #뽕포유… 3번의 흥행 포인트를 거치며 대중화가 된 2020년의 트로트.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사실, 트로트는 원래부터 있던 장르다. 포맷은 조금씩 바뀌었을지언정 트로트가 갖고 있는 핵심 소울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2020년에 트로트가 다시금 크게 회자가 됐다는 것. 이것은 트로트 그 자체가 트렌드라기보다, 트로트가 어떤 거대한 트렌드 소비주체의 '결과물’이라는 뜻에 가깝다. 마치 뉴트로의 부흥이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주체화를 말해주는 것처럼!


2018년부터 2020년까지 트로트가 대중화가 된 과정들을 훑어보자. 그 소비 중심엔 누가 있었을까? 트로트 유행의 중심엔 ‘중장년층’이라는 큰 손이 있었다. 트로트는 본격적인 대중화 이전에도 중장년층이 주로 꾸준히 소비하는 대표 음악 포맷 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트로트가 유행 조짐을 보인 2018년 즈음,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소비세력이 트로트를 더 많이 소비하게 된 것일까? 그것보다는, 꾸준히 트로트를 들어온 중장년층이 점차 ‘대중성으로 카운트’되는 포맷으로 소비 형태를 바꿔 왔다는 분석이 맞을 것이다. 아무리 들어도 대중 차트에 카운트되기 힘든 고속도로 하이샵 테이프/usb를 뒤로 하고, 객관적 조회수와 무작위 알고리즘으로 대중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는 유튜브로 소비 형식의 변화를 꾀한 중장년층이 트렌드의 중심 축에 서 있었다.


즉 트로트의 유행은 트로트 본연의 매력에서 기인했다기보다, 트로트를 향유하는 중장년층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대중으로 올라선 것’이 중요한 흥행 포인트였던 셈이다. 중장년층은 유튜브에 댓글을 쓰며 콘텐츠를 퍼다 나르고, 스마트 기기를 이용한 투표로 팬심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으며, 2030과 모여있는 행사장에서 제대로 같이 호응하는 법을 익혔다. 문화 트렌드로부터 대중과 유리되었었던 장년층이 시대가 바뀌며 드디어 트렌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툴을 쓰는 최강의 소비자로 거듭난 것이다.


중장년층은 이제 누구보다도 주체적인 콘텐츠 소비자로 올라섰다. 2030이 ‘이러면 시니어들이 좋아하겠지?’ 하고 어림짐작으로 차려 놓은 콘텐츠를 꾸역꾸역 수용해야만 했던 시절은 이제 갔다. 중장년층은 음악 시장에서 등한시됐었던 트로트를 전 국민에게 유행시킬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이제는 본인 입맛에 맞게 트렌드를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이 최강 소비자들은 어쩌면 패션 전반의 유행을 뒤집을 수도 있고, 뉴스의 판도를 혁신적으로 뒤집을 수도 있다. 이들이 주력으로 소비하는 문화가 곧 대중 콘텐츠로 자리잡기 쉬워진 시점, 곧 비즈니스계 전반에 거대한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이다.


중장년층은 시장 가치로 봤을 때 가장 매력 있는 소비자다. 열정도, 시간도, 재력도 두루 갖춘 모범적(?) 소비자이기 때문이다. 막강한 이들이 그동안 열세였던 것은 ‘대중성을 인정해주는 툴의 사용법을 몰랐다’는 것 정도에 그치지만, 이로 인해 그들의 시장 잠재력이 제대로 카운트되지 않았던 것은 우리 모두에게 큰 손실이었다. 하지만 2020년, 트로트의 유행은 중장년층 콘텐츠의 본격적 대중화를 보여준 좋은 사례가 되었다.


트렌드 컨트롤러로 자리 잡은 중장년층이 소비하는 카테고리가 부흥하는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음악 카테고리를 넘어 다른 갈래로 뻗어나갈 수 있는 시장 잠재력은 무한에 가깝다. 뽕포유가 중장년층의 음악 트렌드인 트로트를 캐치해서 젊은 시장에 내다 팔았듯, 등산과 화훼같은 전통적인 그들의 컬쳐 코드부터- 세련되고 지적인 어른의 패션 같은 컬쳐 코드가 순진한 2030의 시선에 맞춰 새롭게 탈바꿈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한 10대 트렌드 세터들을 위해 틱톡과 스냅챗이 있다면, 중장년층 트렌드 세터들을 위해서는 어떤 플랫폼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혹은 유튜브가 전 연령층의 소통 창구가 되었듯, 틱톡 같은 쇼트클립 채널도 중장년층을 후킹 하도록 진화할 수 있을까? 그들이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유행의 풀을 고안하는 것이 2020년의 떠오르는 블루오션 키워드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




가지 공장의 한 줄 평


트로트 음악의 다음 타자로 나타날 콘텐츠는 무엇이 있을까? 스포츠? 요리? 식물?

트로트로 나타난 중장년층 콘텐츠의 유행, 끝이 아닌 이제부터 시작이다!

#트로트 #중년층 #장년층 #5060 #시니어 #송가인 #뽕포유 #유산슬 #미스 트롯 #미스터 트롯 #버드리 #뽕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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