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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예리

첫 리빙 플렉스, 빈티지 의자

집은 못 사지만 의자는 한번 사보겠어

(*flex : 사치, 돈 자랑을 이르는 힙합에서 유래된 용어)



좌측부터 세스카 / 토넷 / 아르텍 / 임스 / 카스텔리

계속 보이네, 이름도 생소한 빈티지 의자들

 

이런 이름으로 불리는 의자들을 본 적 있는가? 이런 의자들을 실제로 보거나 가지고 있다면 뭘 좀 아는 사람 인정. 그렇지 않더라도 당신이 인스타그램 피드를 내리는 사이, 혹은 어떤 카페나 편집샵을 향유하는 사이 무심결에 수 많은 의자들을 지나쳤을 것이다. 이 멋스럽고 조금 낡아 보이는 의자들은 바로 ‘빈티지 의자’. 잡지나 영화에서나 보는 건 줄 알았던 빈티지 의자들이 요새 리빙에 힘 좀 깨나 쓴다는 20대 후반과 40대까지의 젊은 소비자들을 아우르며, 적지 않은 가격에도 여러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국내 유명 빈티지 가구샵 '원 오디너리 맨션' 인스타그램과 수많은 문의 댓글 / 가게 이전 행사 웨이팅

기꺼이 지갑을 연다… 어여쁜 의자를 손에 넣기 위해서.



그래서 빈티지 의자가 뭔데?


요즘 말하는 빈티지 의자란, 그저 낡아 보이는 빈티지 느낌 의자 그 이상의 개념이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1940-60년대의 디자인 가구 시장의 황금기, 미드 센추리 모던(Mid-century Modern) 양식에 기반한 디자이너스 퍼니처를 일컫는다. 좀 더 넓게는 1900년대 전반적인 태생으로까지 말하기도 하지만, 주로 100년 이내의 ‘생산자나 브랜드가 뚜렷한’ 의자들로서 100년 이상 된 장인이 만든 앤틱 의자들과 카테고리를 달리 한다.


이렇게 소비자들이 ‘빈티지 가구’를 이전보다 뚜렷하게 정의하면서 자연스럽게 빈티지 의자도 앤틱 중심의 이태원 가구거리에서 떨어져 사방팔방 더 넓은 세상으로 뛰쳐나오게 되었다. 만져보기도 망설이게 되는 고고한 앤틱 가구들 중심의 ‘가구 전문점’에서, 커피나 전시를 함께 즐기고 의자에 편하게 앉아볼 수도 있는 바깥세상의 ‘복합 편집숍’으로-그리고 그걸 즐기는 사람들 속 인스타그램 세상으로 나온 것이다. 비싸긴 비싼데, 노력하면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꽤 친근한 비싼 물건으로 포지셔닝되었달까. 그래서인지 빈티지 의자는 차와 패션을 넘어 어른들의 새로운 플렉스(flex) 프로덕트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커피와 가구 경험을 함께 제공하는 세컨드뮤지오 (좌측 상단) / 전시, 북 토크 등 행사와 함께하는 kollect (우측 상단) / FOOTAGE BROTHERS x Tuff 스튜디오 '빈티지 가구란' 설명 유튜브 (하단)

커피도 마시고 토크도 해요. 사진으로만 보던 이 의자에 편히 앉아서.



벽에 못도 박는 집이지만 플렉스는 즐기고 싶어


이런 빈티지 의자가 새로운 플렉스 템으로 급부상했다는 것은 무엇을 시사할까. 이것은 전통적인 플렉스(=사치품) 제품군이었던 ‘차’, ‘패션’ 카테고리가 리빙으로까지 확대된 것을 의미한다. 본인을 표현하는 바운더리가 소지품에서 공간까지 넓어졌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것이 더욱 눈에 띄는 현상인 이유는, 바로 값비싼 빈티지 의자를 부내 나는 금수저들이 아닌 ‘월세 혹은 전세로 사는’ 젊은 층들이 소유하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이다. 윗 세대보다 좋은 공간을 보고 느끼고 인스타로 공유하며 자란지라 집 꾸미기의 욕구가 가득한 밀레니얼 세대지만, 이들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공간을 제대로 소비할 수가 없는 세대다. 벽에 못을 박기도, 조명 하나 마음대로 뜯어서 교체하기도 집주인의 눈치를 봐야 하는 애석한 소비자층인 것. ‘집은 꾸며야겠고, 상황은 따라주지 않고…’ 이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영리한 밀레니얼 세대가 선택한 가장 리스크 적은 방법은, 집을 해치지 않는 리빙 플렉스 아이템으로 집을 꾸미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등장한 가장 좋은 물건이 바로 빈티지 의자였다.


“의자는 빈부격차, 남녀노소를 떠나

 누구나 접하고 사용할 수 있기에 누구나 의자에 대해서 한 마디씩은 할 수 있는 전문가이다.”

             - alexander von vegesack / director of vitra museum


의자는 제일 기능성과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가구다. 릴랙스, 관계 쌓기, 식사, 작업을 비롯해 무한한 잠재력은 의자로부터 꽃 피울 수 있다. 그래서, 의자는 모든 가구 중 진입장벽이 제일 낮다. 침대 없는 집은 있지만, 의자 하나 없는 집을 찾기는 쉽지 않다. 즉, 의자는 리빙 가구 아이템 중 가장 기본을 말하는 제품 포지션이다. 첫 리빙-플렉스 제품으로서 제격일 수밖에.


게다가 수많은 의자 중에서도 빈티지 의자는 세월로서 그 가치가 입증된 웰메이드 제품이라고 할 수 있다. 대량생산 제품이지만, 명백한 디자이너와 브랜드가 있고,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꾸준히 살아남아 디자인과 제품력을 검증받는 형태로 살아남은 진짜배기 제품. 그래서 빈티지 의자를 사는 젊은 사람들은 단순히 ‘낡고 예쁜 가구’보다는 ‘몇십 년 세월 속 검증된 브랜디드 가구’를 사는 소비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그 검증된 제품을 알아보는 ‘나’는 자연스럽게 유식해야만 한다. 플렉스지만 지적 소비를 하는 것과 같은 모양새니, 왜 빈티지 의자가 나를 드러내는 SNS 배경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지 쉬이 짐작할 수 있다.


#젊고 #트렌디하고 #지적인 패션아이콘 김나영도 반했다 (출처 : 올리브 유튜브채널)

집을 해치지 않으며, 웰메이드고 지적인 이 ‘빈티지 의자’는 품귀 현상이 있다. 품귀 현상이 있다는 이야기는 가품도 넘쳐난다는 이야기다. 빈티지 가구 세계에 입문한 초보자라면,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이 가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검증된 편집샵 오너들의 말을 들어보지 않으면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 자신의 첫 리빙 플렉스를 현명하게 소비하고 싶은 욕구를 가진 젊은 소비자와, 검증된 빈티지 가구/샵 간을 중개해주는 플랫폼 시장이 떠오르지는 않을까. 가구계의 빈테크(빈티지+재테크) 시장은 어떻게 바뀔까. 혹은, 빈티지 의자 다음으로 떠오를 리빙 플렉스 아이템은 무엇일까. 빈티지 의자로 쏘아 올린 리빙 플렉스 공이 어떤 방향의 비즈니스로 옮겨갈지 기대해본다.



가지공장의

없는 젊은 세대들의 가장 특별한 리빙 플렉스 템, 빈티지 의자

낡고 예쁘기만 의자가 아니에요. 내 집, 인스타, 본새를 살려주는 포인트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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