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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예리

미완성의 미학, 공사장 카페

여기 오픈한 곳 맞나요?

아직 공사중인거 아니죠?


인천의 오프듀티 / 제주의 공백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가 한창 유행이었던 대한민국, 이제 좀 지나갔다 했더니 더 심한 놈이 왔다. 하다 하다 이제는 공사장이다. 공장 컨셉이 아닌, 아예 공사가 덜 끝난 느낌 그대로 오픈한 카페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9시 뉴스에선 위생이 문제라며 걱정하기도 하고, 일각에서는 "인더스트리얼 감성이 아니라 디스토피아 감성 아니냐"고 불호 감성을 보이는 사람들도 많지만, 왜인지 공사장 카페는 여전히 유행 중이다. 왜일까?

형식의 파괴 RAW함, 날것, 투박함에 점수를 드립니다!

힙스터가 되려면, 공사장 카페


최근 핫플이라고 불리는 성수동, 문래동, 을지로 등에는 짓다 만 공사장 느낌의 카페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가장 유명한 '블루보틀' 1호점 역시 공사장 느낌의 인더스트리얼 디자인 카페이며, 개인 카페들 역시 콘크리트 그대로 벽돌 그대로 노출된 공사장 컨셉의 카페가 많다.


'블루보틀' 성수점

공사장 카페로 가장 유명세를 떨친 곳은 인천 만수동(현재는 구월동으로 이사)에 자리 잡은 '오프듀티'였다. 그 흔한 간판 하나 없고, 마치 아직 공사 중인 것 같이 다 헤쳐진 바닥과 돌이 그대로 노출된 '오프듀티'는 마치 세기말 카페를 보는 듯한 해체주의적 마감 처리가 허를 찌른다. 푹신한 의자와 편안한 테이블은 포기해야 하며, 굽이 있는 구두는 바로 고꾸라질 수 있다. 컵 코스터는 CD, 테이블은 오래된 TV 모니터다. 이해 못 한다면 당신은 힙스터가 될 수 없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인천 '오프듀티' / 성수동 '대림창고' / 성수동 '에롤파' / 성수동 '어니언'

원래부터 공장을 리모델링한 카페가 많은 성수동에는 유독 공사장 컨셉의 카페가 많다. 성수동의 대장 격인 '대림창고'부터 금속 공장을 리모델링한 '어니언'과 붉은 벽돌 외관이 매력적인 '에롤파' 등이 유명하다. 인싸가 되기 위해서는 꼭 들려 사진을 남겨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도 공사장 카페의 유행은 비켜갈 수 없다. 포항 공장 카페로 유명한 '프레가데로'는 원래 '협성싱크'가 있던 곳으로 '프레가데로'가 설거지통이라는 뜻을 알게 된다면 그들만의 위트에 절로 손뼉을 치게 된다. 공사장 카페 컨셉 답게 테이블은 시멘트 벽돌과 공장 부속품으로 자체 제작되었고, 곳곳에 기존 모습 그대로 손대지 않은 날것의 재미가 펼쳐져 있다. 대구에 위치한 '빌리윅스' 역시 폐공장을 리뉴얼한 대규모 베이커리 카페로 높은 층고는 기본, 곳곳에 폐허처럼 펼쳐진 시멘트 인테리어는 공사장 카페의 대형 버전을 완성한다. 가장 최근 버전의 공사장 카페는 바로 제주도에 위치한 일명 방탄소년단 없는 방탄 카페(BTS 멤버인 슈가의 형이 운영하는 카페)로 유명한 '공백'이다. 카페 자체 건물은 그나마 양호(?)한 편이나 외부로 이어진 전시동에서는 흡사 미래에 온 것 같은 설치물과 '공백'이라는 이름이 느껴지는 공허한 공간감이 아직도 공사가 진행 중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포항 '프레가데로' / 제주 '공백' / 대구 '빌리윅스'


날 것의 생생함과 시간의 흐름


도대체 사람들은 이러한 공사장 카페에 왜 열광하는 것일까? 그 답의 힌트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살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대부분의 공사장 카페는 인스타 핫플로 주로 2030의 젊은 층들이 찾는 곳이다. 이들은 이국적인 공간이 주는 경험의 즐거움을 좋아한다.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하고 옛것과 새것의 경계가 무너지는 곳에서 새로움을 느낀다. 내부 공간에 식물을 들이고(밖을 안으로), 외부 공간에 테라스를 두면(안을 밖으로) 핫플이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늘 완벽하게 계획된 공간에서 살아온 이들은 날 것이 주는 생생함과 시간의 흐름이 남긴 흔적을 인스타에 남기고 콘텐츠로 소비한다.


공사장 카페로 주목받기 위해서 중요한 점은 바로 이 날것의 생생함과 시간의 흐름이다. 시멘트를 그대로 노출하고 부서진 의자를 두고 깨진 거울로 마무리하며 적은 비용으로 인테리어를 완성했다고 좋아하면 큰 코 다칠 수 있다. 공사장 카페의 성공은 단순히 미완성된 인테리어가 아니다. 가짜가 아닌 진짜, 실제 오래된 곳을 시크하게 툭 남겨두었을 때 사람들은 공간에 감동한다. 가짜로 시멘트를 쌓아 부시고, 다른 곳에서 주워온 벽돌로 테이블을 만들어봤자 그냥 먼지 폴폴 날리고 불편한 카페밖에 되지 못한다. 공사장 카페로 핫플이 되기 위해서는 기존 공간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신축보다 더 많은 기획과 디자인이 들어갈 때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가지공장의 한 줄 평


건물이 너무 오래돼서 비가 새고 쓰러져 간다고요?

일단 커피부터 내려보세요. 사람들이 몰릴 테니까, 그 돈으로 새로 지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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