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채은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범죄 실화



ㅡ교양과 예능 그사이 어디쯤에서 소비하는 범죄 이야기


최근 종영한 괴물을 비롯한 마우스, 모범택시 등 범죄 시리즈가 대거 등장하고 있다. 몇몇은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을 정도로 수위가 높지만, 이제는 마니악한 장르물에서 메이저로 올라온 범죄 스릴러. 하지만 시청자들의 심장을 그보다 더 쥐락펴락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교양의 탈을 쓴 범죄 프로그램이다. 실화라서 더 놀라운 범죄 이야기에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가 빠져든다. 두 번째 시즌도 승승장구하고 있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부터 범죄와 범법의 차이부터 짚어주는 ‘알쓸범잡’까지, 그 비결이 궁금하다!

픽션보다 더 드라마틱한 사건 사고들, 이야기가 되다
범죄 스토리텔링 예능의 양대산맥 :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좌) 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 잡학사전 (우)

‘그것이 알고 싶다’의 데이터와 취재를 바탕으로 생겨난 시사형 예능이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일명 ‘꼬꼬무’는 대한민국 역사에 전환점이 되는 범죄 사건과 사고를 다각도에서 깊이 있게 다룬다. 파일럿으로 시작한 프로그램이지만 시즌 1 종영 전에 시즌 2를 확정 지을 만큼 선풍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 프로그램은 장도연, 장항준, 장성규로 이루어진 MC 트리오가 앞에 앉아 있는 친구에게 이야기해주는 방식을 선택하고 각 장면을 교차 편집한다. 주민등록증이 생긴 이유, 15년 전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연쇄살인 등 충격적인 논픽션에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도, 이를 처음 들어본 세대도 모두 집중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그에 반해 ‘알쓸범잡’은 범죄 이야기에 국내 지역을 기반한 여행 코드를 덧붙였다. 범죄 심리학자 박지선, 판사 출신 법학박사 정재민, 과학 박사 김상욱, 영화감독 장항준, 그리고 진행을 맡은 음악가 겸 예능인 윤종신까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신선한 관점과 서로의 주제를 공유하며 확장한다. 그 뿐만 아니라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스토킹 범죄나 가습기 살균제 같은 현재 진행형 문제들도 짚어 '알쓸범잡'은 어디서도 접하지 못한 인문학적 해석까지 선보인다. ‘꼬꼬무’처럼 하나의 긴 이야기로 호흡하진 않지만 하나의 주제에서 쏟아지는 이야기들은 방대하다. 양형이 도대체 왜 이렇게 나오는 건지, 사이코패스는 어떤 사람들인지 서로 질문을 하는 사이 시청자들은 가려운 부분을 긁은 듯 속이 시원해진다.

예능에 입성한 범죄 이야기는 뭐가 달라요?

사실 범죄라는 주제가 뉴스 외 프로그램에서 다뤄진 것은 꽤 오래되었다. 짧게 지나가는 뉴스 기사가 아니라 집요하게 파고드는 시사 교양 포맷으로 방송사마다 간판 프로그램이 만들어진 것은 바로 1990년대. 현재까지 방영 중인 ‘PD수첩’(MBC)은 30년 넘게 크고 작은 범죄를 꾸준히 취재해왔고, 그와 쌍벽을 이루는 ‘그것이 알고 싶다’(SBS) 역시 1992년 이래 문성근, 정진영, 박상원을 거쳐 김상중까지 진중한 배우들이 전하는 사회문제와 미제사건으로 골수팬을 보유하고 있다. ‘경찰청 사람들’(MBC), ‘공개수배 사건 25시’(KBS)는 2000년 전후로 종영했지만 강렬한 BGM으로 여전히 기억된다.


그랬던 '범죄'가 예능 세계로 들어왔다! 시종일관 평정심 가득한 톤으로 사건을 추적하는 교양 프로그램과 다르게 하나의 사건이 점차 확장되고 연결되는 예능판 범죄 스토리텔링. ‘방구석 코난’들을 중심을 미스터리, 사건 사고를 소비하는 마니아들은 항상 있었지만, 이번엔 뭔가 스케일이 다르다.


1990년대 등장한 범죄 시사 프로그램

‘꼬꼬무’ 시즌 1에서 방영한 신창원 편 유투브 요약본은 무려 793만 뷰. 이를 비롯한 엄청난 파급력을 인증하는 영상 클립들이 줄줄이다. 실제 관련인 인터뷰와 현재까지 미치는 사건의 영향력이 이야기에 녹아있어 더 실감나고 소름 돋는다. 당연히 피해자와 가해자가 존재하는 범죄 테마를 너무 가볍게 소비되는 것은 지양해야겠지만, 요즘 범죄 스토리텔링은 이렇듯 시사보다는 예능에 가깝게 소화되고 있다. 예능 포맷은 시사 교양 프로그램의 눈높이 교육에서 한 걸음 나아가 인과 관계보다는 서사에 집중, 시청자가 중간에 길을 잃지 않게 잘 따라오고 있는지 계속 확인한다.

조회수가 폭발한다! 누구나 하나쯤 클릭해봤을 '꼬꼬무' 유투브 요약본

어떤 스토리? 이젠 어떤 ‘스토리텔러!'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이 풀어내는 뒷이야기를 담은 유투브 채널, 음모론과 범죄를 엮어서 풀어낸 ‘당신이 혹하는 사이’ 가 포함되는 [범죄 테마 + 스토리텔링 포맷] 공식이 전성시대를 맞이했다. 개인 방송에서 시작된 썰 푸는 방식이 전 국민이 관심 가질 법한 주제와 만나서 공신력 있는 미디어에서 방영되니, 어쩌면 미리 점쳐진 대박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공식을 정착시킨 일등 공신이 따로 있었는데 바로 주제를 찰떡같이 살리는 스토리텔러다. 콘텐츠와 함께 떡상한 인물로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활약한 박지선 교수와 ‘꼬꼬무’의 이야기꾼 장항준이 꼽힌다. 그들이 ‘알쓸범잡’에 패널로 함께 캐스팅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선 박지선 교수는 범죄심리 전문성에 대한 신뢰를 얻은 캐릭터이다. 이 독보적인 범죄 심리학자는 예리한 눈빛으로 거짓말 속에서도 정보를 얻어내는 관찰자로서 ‘그알’의 책임감 있는 자문역을 맡아왔다. ‘유퀴즈’와 ‘그알외전’에 출연하면서 프로의 모습과 개인의 가치관이 어우러져 대중에게 더 가까워졌고 그 포텐이 ‘알쓸범잡’에서 터지고 있는 것. 장항준 감독(?) 또한 범죄 수사물 제작 경험을 가진 타고난 스토리텔러로 우리에게 꽤나 익숙하다. ‘킹덤’, ‘시그널’, ‘싸인’같이 주옥같은 작품을 쓴 김은희 작가의 남편으로도 유명한 그는 사실 예능, 드라마, 영화, 연기 등 안 해본 게 없는 만능 이야기꾼이다. 이들은 사회에서 인정받는 전문가지만 자신의 위치나 권위를 내세우기보단 함께 분노하거나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인간’이기도 하다.


유퀴즈에서 명언을 날려 화제가 된 박지선 범죄심리학 교수 & 어디서든 입담으로 올킬하는 만능 이야기꾼, 장항준 감독

화면 안에서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스토리텔러와 마주한 패널들이다. 그들은 천생 이야기꾼들이 풀어내는 실타래에 솔직한 리액션을 하며 흥을 돋운다. 몰입하고 공감하는 그들의 모습은 시청하는 우리의 반응을 닮아있다. 좋은 화자와 경청하는 리스너는은 티키타카를 함께 쌓아가며 상호 소통 가능한 인터넷 방송을 TV에 맞게 재현한 듯하다. 하늘 아래 더는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90년대에 붐이 일었던 범죄 프로그램을 오늘날 스토리텔러가 검증된 썰을 푸는 방식으로 재해석한 것은 엄연히 다르게 소비되고 있다.


카타르시스를 느끼고자 찾는 스릴러와 다르게 여기서 나누는 이야기들은 주변에서 일어난 처참한 실화이다. 그 때문에 일차원적 몰입감 이상으로 감정적 설득이 중요한 코드가 되고 이 점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완급 조절을 통해서 해낸다. 이해되지 않고 빠져들 수 없는 콘텐츠에는 30초도 기다려 주지 않는 시대니까 좋은 스토리텔러를 여기저기서 찾는 것은 당연하다.


믿고 듣는 스토리텔러가 말해주는 재해석된 그날 이야기

‘그것이 알고 싶다’ 유투브 공식 계정에는 #그알 캐비닛과 #그알 외전 시리즈가 연재되고 있는데, 여기서는 새로운 사건을 소개하지 않는다. 대신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하는 피디들과 출연했던 전문가들의 입을 거쳐 다시 듣는 사건들은 살이 붙고 에피소드가 되어 다른 각도로 조명된다. 현장의 중심에 섰던 사람들의 경험을 생생히 풀어내니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을 수밖에. 문맥이 꼼꼼히 이어져 해당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설득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할까. 구멍이 뻥 뚫린 퍼즐이 ‘그것이 알고 싶다’가 다루는 현재 진행형이라면 유투브 계정은 그림이 채워진 액자를 아카이빙하고 있다. 이런 열린 결말을 꽉 닫아주는 서사와 자타공인 스토리텔러는 주욱 이어지는 범죄 서사의 좋은 소스가 된다.

#그알외전 : 전문가의 심층분석 더하기
#그알캐비닛 : 취재한 사건 + 후일담 아카이빙

이렇게 완성된 서사는 보는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추리하고 온갖 ‘-카더라’를 만들어내는 대신 이런 일이 주변에서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이성적으로 마주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면서 음지에 있던 미스터리 사건,사고는 대중성을 획득한 '꼬리에 꼬리를 문' 이해 가능한 이야기가 되었다. 이야기를 예능에서 소비하고 있지만 끼치는 영향력은 단순 재미를 주는 것만이 아니다. 결론은 경각심을 갖고 함께 변화를 만들어 가는 것에 초점을 둔다. 여기에서 우리의 등을 살짝 밀어주는 것 또한 스토리텔러의 역할이다. 공감할 수 있게 친절히 이야기해 주는 것만으로 듣는이들은 동조하게 된다.

몇 년 전 역사를 주제로 스토리텔링 하는 프로그램들이 교양과 재미를 모두 잡았다면, 이제는 범죄라는 '우리 주변의 이야기'로 메인 스트림이 옮겨온 상태. 다음에 뜨는 ‘유사 교양’이 어떤 주제든, 이야기하는 화자의 캐릭터가 시대에 맞는 흐름과 대중성에 응답해야 성공한다!

가지 공장 한 줄 평


세대를 초월하는 요즘 범죄 스토리텔링, 이제는 추적 리포트가 아니라 이야기꾼의 친근한 썰이 통하는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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