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테러리스트들의 유쾌한 반란
왜 망친 홈카페 영상을 보냐고 물으신다면
냉장고를 부탁해, 마스터 셰프, 백종원, 그리고 얼굴 없는 홈카페/홈다이닝 요리사들까지… 다양한 매체들에서, 우리는 아무리 평범한 재료라도 셰프의 손을 거치면 훌륭한 요리로 재탄생되는 마법 같은 과정을 몇 번이고 지켜봐 왔다. ‘어쩌면 저렇게 야무진 손을 가졌을까?’, ‘왜 똑같은 레시피인데도 내가 하면 다른 맛이지?’라는 생각들은 혼자만 고이 접어 삼키고, 우리는 멋진 실력을 가진 스타 셰프들에게 경외의 박수를 보내곤 했다.
그때쯤일까? 완벽하고 맛 좋은 요리에게만 최고의 찬사를 보내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그즈음,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서 슬금슬금 ‘홈카페 NG 영상’들이 인기 콘텐츠로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감성과 세련미 빼면 시체인 홈카페 콘텐츠의 NG컷이라니 웬 말인가? 호기심 반 의심 반으로 콘텐츠를 눌러본 순간, 필자는 넋을 놓고 실실거리며 영상을 끝까지 보았고 이후로도 몇 십 분동안 ‘망친 홈카페’ 영상을 계속해서 찾아보았다.
방심하지 마세요, 누른 순간 어이없는 헛웃음을 터뜨리면서 홀린 듯이 계속 보게 될 거예요. 단숨에 친근해진 음식의 NG컷
긴장감 제로. 기존 홈카페 콘텐츠를 볼 때와 사뭇 다른 느낌을 안겨주는 홈카페 NG콘텐츠
완벽한 요리가 인간적으로 보일때
기존 홈카페 콘텐츠가 선망과 동경의 마음을 심어주었다면, 슬금슬금 인기 콘텐츠로 치고 올라온 이 ‘홈카페 NG컷’들은 오히려 그 선망과 동경의 뒷모습을 버젓이 보여준다. 이것은 ‘어떻게 하면 저렇게 집에서 멋지게 먹을 수 있지?’, ‘다시 만드는 일은 없을까?’ 등과 같은 유저들의 무의식적인 궁금증을 속 시원히 해결해주고, 더불어 묘한 '저런 멋진 사람도 때론 저렇게 사는구나' 하는 안도감까지 선사하는 더블 콘텐츠인 것이다. 소란스러운 소리로 컵을 깨고, 흰 테이블보에 색 있는 액체를 흘리고, 반죽이 뚝뚝 잘못 찢어지기도 하고… 자신들의 멋지고 완벽한 모습 뒤 여러 가지 해프닝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NG 영상들은 새로운 종류의 카타르시스와 어떤 인간미까지도 느끼게 한다. NG 영상을 보고 다시 완벽한 프로의 홈카페 영상을 보았을 때, 그들의 노력과 시간이 오버랩되며 비로소 콘텐츠를 온전히 이해하여 동경이 배가 됨은 물론이다.
홈카페 NG는 애교, 진짜 와장창을 보여주마! 넷플릭스 "파티셰를 잡아라"
‘요리 콘텐츠는 완벽해야 팔 수 있는 거 아니었어?’라는 고정관념을 깬 요즘 사례는 하나 더 있다. 넷플릭스의 nailed it!으로 유명한 한글 제목 ‘파티셰를 잡아라’가 바로 그것이다. Nailed it! 을 한국어로 직역하면 ‘참 잘했어요!’ 정도가 되는데, 말 그대로 초보자들이 어떤 해괴망측한(?) 요리를 내와도 '참 잘했어요' 딱지를 붙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아마추어 베이커들이 ‘걸작’ 케이크를 구워내라는 미션을 받고, 셰프가 만든 견본 케이크와 최대한 유사하게 (나름대로 열심히) 케이크를 만들어내는 콘텐츠로, 결과물은 당연히 엉망진창. 마치 지옥에서 갓 구워낸 케이크 같은 작품도 많다. 기존 권위 있는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서 느꼈던 숨 막히는 감정은 이 프로그램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 케이크를 만드는 사람과 평가자,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유저들은 너 나할 것 없이 낄낄대며 프로그램을 ‘즐긴다’. 혹자는 이 프로그램이 코미디 프로그램이 아닌 힐링 프로그램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어떤 의미인지 충분히 짐작 가능한 바. 이제 소비자들은 멋지고 작품성 높은 요리뿐만 아니라, 한 시름 놓고 침대에 누워서 편하게 볼 수 있는 ‘실수 만발’ 망친 요리도 제대로 된 콘텐츠로 수용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요리 게임이었지만 어른들의 요리 망치기 게임으로 거듭났었던 'toca kitchen(모바일)'
망쳐서 더 재밌다! 뭐가 나올지 무궁무진한 ‘막 요리’
잘 차린 음식 대신 뭘 보여줄 수 있는데요?
맛있고 참신한 음식 콘텐츠 시장은 포화상태다. 어떤 SNS를 들어가도 눈을 반짝거리게 하는 수준급 요리들이 넘쳐난다. 이것을 지켜보는 소비자들은 그 과정과 결과물에 감탄하며 반응하거나 or 스크랩하고 공유한다. 화면으로 보는 완성된 멋진 요리 콘텐츠들은 어쩌면 멋진 인사이트와 같다. 프로가 만든 프로페셔널한 요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콘텐츠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2019년, 영상이라는 매체는 요리 콘텐츠에서 기대하는 인식을 더욱 확장시켰다. 요리가 영상이라는 매체를 만나면? 본래의 ‘맛있어야만 하는’ 목적성을 굳이 완벽하게 지키지 않아도 된다. 시간도 목적도 없고 먹어야 할 의무도 없다. 목적성이 약해지니 요리는 완벽해야 한다는 인식이 같이 느슨해졌고, 이 느슨한 인식을 극대화해서 활용한 콘텐츠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맛있어야만 하는 룰을 깰 수 있으니 과정을 보여주는 풀이 더 넓어졌다. 엄지를 척 치켜올릴 수 있는 과정만 제대로 된 요리 과정이라고 쳐 줬던 요리 시장에 이단아가 등장한 것이다. 완벽을 염두에 둔 요리의 기본 룰을 가볍게 무시한 이 새롭고도 어설픈 요리 콘텐츠들은 본인의 요리와 함께 기존 고정관념을 산산이 조각낸다. 먹는 경험을 주지 못하는 대신, 만드는 과정에서 '먹는 요리'만 생각했다면 하지 못했을 참신한 실수와 시도들이 생겨났다. 의외성은 결과를 예측 불가하게 만드는 법. 이 모든 요리 과정을 지켜보는 우리에게 또 다른(?) 긴장감을 선사하는 새로운 과정 중심 콘텐츠로 거듭나 버렸다.
이 포인트는 현대인들에게 색다른 후킹 포인트로 다가온다. 망친 요리 콘텐츠들의 댓글들은 그들의 완성된 요리보다 인간적임에 열광한다. 어떻게 잘 못 만든 요리로 돈을 벌 수 있냐고? 예정된 결과가 아닌 예기치 못한 과정을, 동경이 아닌 공감을 파는 콘텐츠로 포지셔닝 했기 때문이다.
어설픈 요리 콘텐츠는 어쨌든, 변수가 넘쳐나는 이야기다. 그렇다는건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 있다는 뜻이다. 어디서 어떤 실수를 할 지 모르기에 콘텐츠 전체를 스킵하지 않고 보는 경우도 다수. 적은 이탈율은 스트리밍 시대에 갖춰야 할 최고의 무기다.
실수로 과정의 변수를 만드는 콘텐츠의 선례가 요리였을 뿐, 앞으로 이 명제를 가지고 응용할 수 있는 콘텐츠는 무궁무진하다. 프로들의 시장에 반기를 들 아마추어들 뿐만 아니라, 일부러 실수를 파는 프로들도 서서히 나타나지 않을까? 측은한 웃음을 비즈니스적으로 파는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가지 공장의 한 줄 평
요리를 못한다고 서러워 말아요. 지옥에서 온 요리도 콘텐츠가 될 수 있는 시대
앞으로 ‘서투른 콘텐츠’의 파워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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